재에서 액체로: 욕망의 유동성

2009. 10 박은영 개인전 Liquid Ashes 액체적 재(液體的灰),

SeMA 서울시립미술관 신진작가지원 프로그램 선정 작가전, 토포하우스, 서울

 

재에서 액체로: 욕망의 유동성

전 영 백 (홍익대학교 교수)

회화를 전공한 작가가 비디오 영상을 통한 미디어작업을 하고, 또 설치와 공연으로 확장해간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 평면과 뉴미디어, 3차원 입체와 공연이라는 다양한 장르끼리 상통하는 일관성과 작업의 맥을 가질 수 있을까. 거기에 회화-3D-공연의 이질적 매체들이 만드는 시너지효과까지 이룬다면? 이질적 매체들의 복합이 하나의 매체가 표현할 수 있는 제한된 표현을 넘어설 수 있다면?

사실, 어려운 얘기이다. ‘매체의 확장’이니, ‘영역 간 교류’니 하는 말들은 오늘날 현대미술에서 이미 클리쉐가 될 정도이다. 그런데 그 현란한 말 잔치에 정작 먹을 것이 별로 없다. 여러 매체를 넘나들면서 자신의 컨셉을 보다 자유롭게 구사하고, 작품성을 유지할 수 있는 작가란 결코 쉽지 않다. 우선 매체에 대한 기술습득의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속성에 대한 이해가 기반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박은영의 작업은 이러한 이상이 허상이 아닐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이번 첫 개인전인 <액체 재(Liquid Ashes)>전은 적어도, 다른 매체들끼리의 과감한 조합과 그 확장을 실제로 구체화시킨 전시이다. 설치, 비디오 영상, 현대무용의 퍼포먼스, 그리고 전위 음악 등이 어우러진 종합 작업이었다. 무대 배경은 스펙터클하고, 극대화된 드라마 속에서 “달빛과 같이 어스름한 조명의 음영”은 작품의 중요 요소로 작용하였다. 이와 같은 연극적 분위기에서 설치와 퍼포먼스, 그리고 영상은 현실을 벗어나는 마력적인 비젼을 연출해 냈다.

이 복합 작업에서 가장 관심 있게 본 것은 서로 다른 매체들끼리의 유기적 연결성이다. 예컨대, 설치작업 중 처음으로 대면하는 스컬피 인형(sculpey figure)들의 행렬은 마른 식물(옥수수잎과 해바라기)과 함께 어울려 있다. 그리고 작가는 이 인물들에 강렬한 빛을 단절적 방식으로 투사시켜, 벽에 반영된 그림자를 드라마틱한 연극으로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현대무용 퍼포먼스는 스컬피 인물 군상의 연장으로 고안되어 인체의 강렬한 움직임을 형상화하고자 도입되었다. 공연자는 스컬피 인물상이 현실로 나타나 그 무생물의 상상의 이미지를 인체의 실제 퍼포먼스로 구현시킨 셈이다. 그리고 그렇게 ‘환생한’ 그는 중앙무대로 올라가 강렬한 해바라기 설치물들을 배경으로 격렬한 몸짓을 한다. 여기에 작가가 직접 편집한 전위적 음악은 영역 간 진행을 연결시키고 전체적으로 통합시키는 매개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중앙 설치물 하단의 비디오영상은 자연풍경과 흐르는 물을 아주 천천히 시각화한다. 이렇게 설치, 무용, 음악, 그리고 비디오는 모두 같이 흘.러.간.다.

재가 액체일 수 있는가. 이는 하나의 사물에서 다른 종류로의 변형을 상징한다. 예술가를 의미하는 중세 ‘연금술사’의 탐구는 현대의 발달된 매체로 계속 이어지는 것일까. 연금술을 오늘날 다시 불러오는 작업을 종종 접하는데, 시의성이 있다고 본다. 박은영 작업의 주제도 연금술의 사물 변형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의 근본적 관심은 다른 매체들 사이를 넘나드는 유동성(fluidity)이다. 그러니까 사물의 한 상태가 다른 양상으로 ‘되어가는(devenir)’ 속성 자체에 주목하는 것이다. 한 쪽으로 치우침 없이 한 단계와 다른 단계의 중간과정이다. 그래서 ‘늑대 아이’라는 소재에 관심을 가졌고, 또 본래 드라이플라워의 상태로 살아있는 특이한 꽃, 헬리크리섬 천 송이를 설치작업에 포함시켰다.

사실, 들뢰즈가 강조한 ‘되어간다’라는 ‘devenir’의 뜻은 ‘둘 사이(entre deux; between two)’ 라는 설정에, 과정적 움직임이 강조되어 있는 말이다. 즉, 끝없이 되어가는 과정, 유동성이 함축된 개념인데, 이를 가장 대표적으로 나타내는 모티프가 박은영에게는 물이다. 물은 그의 작업을 이루는 설치와 퍼포먼스, 음악 그리고 비디오 매체를 넘나드는 핵심 소재이고, 그 속성인 점착성과 유동성은 이러한 다양한 방식으로 그가 표현하려는 추상적인 주제라 할 수 있다.

물은 작가에게 기(氣) 혹은 근본적 에너지, 그리고 무엇보다 욕망이다. 그는 욕망이란, 물처럼 일시적으로 머물렀다가 다시 끊임없이 흐르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비디오라는 매체를 사용하는 것은 그에게 운명일 지 모른다. 왜냐하면 작가는 ‘비디오’라는 단어 속에 이미 물이 들어있음을 착안하기 때문이다. ‘vide(비어있는)’와 ‘eau(물)’이 합성된 말인 ‘video’는 물의 유동성을 처음부터 함유하는 말이다. 사실 이는 ‘본다(je vois)’는 뜻을 갖는 말이기에, 박은영의 작업에서는 시각계로 나타나는 욕망의 유동성이 물로, 액체로 상징되는 것이다.

작가는 99년 파리에 도착한 후 8년 동안 다양한 매체로 확장해 나갔다. 처음에는 평면회화에 기반한 사진, 설치작업을 하였고, 이후에는 공연영상으로 비디오댄스와 서체를 활용한 비디오작업을 다뤘다. 현재 그는 비디오 및 영상과 함께 설치를 병행하는 복합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파리에 있는 동안 작가는 현대무용 전공의 김원교수를 알게 되었고, 무용공연과 연계하여 작업을 하였다. 특히 아트 페스티발에서의 일본 현대부토무용가 마키 와타나베와의 만남이 작업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늑대-아이’라는 제목의 부토(舞踏; buto(s)) 공연에서 작가는 어둠 속에서 조성되는 강렬하고 섬세한 움직임을 목격하고 이후 그의 작업에 근본적인 미적 영감을 받게 되었다.

박은영은 이 부토 공연에서 어린 시절의 우수꽝스런 꿈 이미지, 몽유병자의 몽롱한 비젼을 느꼈다고 했다. 부토라는 신체 퍼포먼스는 끝도 없고 격정적인 제스추어, 즉흥적이고 감각적인 몸의 표현이다. 작가는 이것에서 모호하고 추상적이지만 자신이 찾던 근본적인 미적 언어를 보았다. 그것은 그에게 유동성을 대표하는 물과 같은 성격이자 욕망의 속성이었다.

사실, 우리에겐 생소한 일본의 부토가 파리에서 각광받는다는 점은 신기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춤’으로 규명되기를 거부하는 이 신체 퍼포먼스는 현대미술에서 보는 일종의 ‘바디 아트’로 수용한다면, 박은영 작업과 무리 없이 연결된다. 부토가 보이는 격렬함과 즉흥성, 그리고 섬세함과 유동성은 물과 비디오로 드러내고자 하는 그의 시각언어와 결코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비디오와 신체 퍼포먼스 그리고 서체(calligraphy)를 활용하는 작가이지만, 본래 그림을 전공했기에 박은영은 늘 회화의 근본적 문제로 돌아오는 듯하다. 이번 전시에 포함된 비디오 작업 <두 토끼>(2002)는 온통 먹으로 새까만 두 손에 물을 부어, 그 물에 먹이 씻겨 하얀 손이 될 때까지의 화면 전환을 다룬 것이었다. 달의 이미지가 원형-구멍-심연-미지의 세계로 전이되면서 이 한국적 전래동화의 내러티브는 흑과 백, 그리고 평면과 깊이의 문제로 추상화된다고 할 수 있다. 토속적이고 동양적인데 이것이 회화의 근본 구조와 연결된다. 서양의 발전된 매체로 우리의 섬세하고 비언어적 감성을 표현해 낼 수 있다면, 그래서, 이를 테면 작가가 바라듯, 잡을 수 없는 공(空; void)의 영역을 시각화할 수 있다면...

이것이 박은영의 작업을 내심, 크게 기대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