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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읍(欷泣) 속에 꽃이 피다…

회읍(欷泣) 속에 꽃이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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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 박은영의 작품, 정원에는 생화도 없고 만져볼 수 있는 진짜 꽃다발도 없다…

            그러나 진짜 꽃이나 꽃다발이 없다는 것-작품 “액체적 재(灰)”에서 보게 되는 꼿꼿이 정렬되어 있는 인조 해바라기를 콕 집어 말하는 것은 아니다-은 말라르메 작품 속에 나오는 장미의 부재처럼 그들의 부재-어떤 꽃다발도 없음-가 주의 깊고 치밀하고 몽상적인 이 젊은 예술가 자신의 작품 속에서, 소르본에서 훌륭히 학업을 마치고 2007년 조형예술 박사학위를 받을 때 지도교수 및 논문심사까지 맡는 영광을 내게 주었던 작가의 섬세하고도 날카로운 작품 속에서 계속 살아 숨쉬고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피어난다.

            독창적인 창작과 이론화 과정을 멋지게 조우시킨 “비디오 혼성, 액체적 재(灰)”라는 제목의 논문은 이미 전반적인 그의 예술 세계를 한 눈에 보여준 것으로 서울에서 4년간 “서양화” 교육을 받은 후 1999년부터 파리에서 곧바로 시작했던 대학과정을 결산하는 것이었다.

            박은영은 철저하고 뛰어나며 영감이 풍부하고 자신의 창작행위에 극도로 명철한 견해를 부여하는 조형예술가이다. 이 작가는 자신이 완벽하게 알고 있고 현대미술의 영역에 속하는 대담하고 독창적인 작품을 만드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며 이 영역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그 안에서 성장할 줄 안다.

 

            그렇기에 실제적인 꽃과 꽃다발의 부재, 실존하지 않는 꽃과 꽃다발의 역설적이면서도 감탄할만한 존재 속에 피어나는 부재를 표현한 박은영의 작품은 진정한 예술작품이기에

 

“표현의 대상이 된 사물은 전혀 예찬하지 않으면서

그 사물과 유사하다는 이유로 회화는 찬사를 받다니.”

 

라고 했던 파스칼의 명언에 제대로 들어맞는 경우라 할 수 있다. 비록 예술이 우리에게 단지 모사, 유사물 혹은 이상화된 허구에 지나지 않는 상상의 꽃을 찬미하게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안에 야기되는 찬미가 다른 곳에서 생화를 마주했을 때 느껴지는 찬미와 양립될 수 없는 것이 아니기에, 예술의 그 거만함을 전혀 탓할 수 없음을 명확히 지적하여 파스칼 사상의 뉘앙스를 표현해야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박은영은 자신의 꿈, 상상, 환상의 비현실성을 구현하고자 열정적으로 몰두하는 진정한 창조자이며 자신이 만든 예술적 정원에서 전혀 뽐내지 않으면서 자기 꽃의 비현실성, 즉 아주 현실적인 작품의 비현실성을 보여주고 그 아름다움이 우리 내부에서 흐느끼게 만드는, 시(詩)의 눈물이 흐를 정도로 감동을 주는 진정한 창조자이다.

 

            또한 여러 해 동안 다양하고 풍요로운 실험과 제작을 거친 그의 작품들은 한 편으로는 아크릴-특히 고야풍인 “늑대아이”나 “마키 시리즈”의 어두운 장면을 생각나게 한다-을 주로 사용하는 회화 형태였으며, 다른 한 편으로는 대부분의 경우 설치미술의 형태, 컴퓨터 처리한 비디오 필름(DVD), 애니메이션의 형태로 혹은 부토(Butō)에서 영감을 받아 프로 무용수인 마키 와타나베와 교헤 자이주, 조예 깊은 음악가, 특히 임진영과 이상윤이 함께한 무용 공연 시 영상으로 상영되는 경우가 많았다.

            박은영은 영상제작 및 촬영, 촬영 영상의 컴퓨터 처리 및 편집 혹은 설치미술과 같이 혼자서 하는 작업과 무대에서 하는 공동작업의 결합을 좋아한다.

            그의 정원에서 한가로이 거닐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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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트르/아봐르(Être/Avoir) ». N°1…

            터럭으로 감겨있는 자기 몸의 한계를 손끝까지 느껴보기 위해 숨이 찰 때까지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이슬람교 수도승처럼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리거나 공간 내에서 격분해 버리지 않는, 짧은 검정색 원피스를 입은, 살짝 부감으로 촬영된 여자 무용수를 보면 무덤덤해질 수가 없다. 알바트로스의 비상, 이카로스의 비행인 듯한 춤은 이분화 및 시차를 둔 오버랩으로 처리되어 불규칙하게 끊어지고 해체되고 세분화되고, 비디오 아티스트의 정교한 작업과 움직임의 일시적이고 무의식적인 순간들의 분절로 인해 몸짓의 다발에서 느껴지는 활기는 증대된다.

 

            « 에트르/아봐르(Être/Avoir) ». N°3…

            바닥에 웅크리고 누워 맨발과 다리만을 이용해 자기 몸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면서 움직이다가 곧 어디에서부턴가 소용돌이치며 새어 나오는 유색의 양수 속에 잠겨버리는 태아를 표현한, 완전한 부감기법으로 촬영된 무용수의 영상은 감동적이다. 여기에서도 여전히 영상작업은 애씀의 움직임, 흔적의 모호성, 선회하고 잉태되는 육체의 쇠잔함…꿈이 갖는 치명적 개화로의 굴복을 이상적으로 표현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 Being Involved »…

            정교하게 조절되는 여명이나 석양의 음영이 뿜어져 나오는, 혹은 비스듬히 스치는 빛 줄기로 베어져 나뉘어진, 아무 것도 없이 길게 펼쳐져 있는 고요한 무대에서 영롱한 색채의 긴 의상을 입은 스무 명 가량 되는 무용수들의 가녀린 육체가 긴 시간 동안 움직임을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느리게 움직이다가 때로는 고독하게 때로는 모두가 하나되어 다같이 머리를 끄덕이고 허리를 흔들고 몸을 꺾고 포복하고 빙글빙글 돌고 그러다가 또 함께 몸을 비틀고 엎드리고 갑자기 똑같이 박자에 맞춰 왔다 갔다 하는, 시적이고 기이한 급변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위엄 있는 군무는 장관이다.

            예를 들어 남녀 무용수들이 처음에는 각자 자기 앞에 놓여있던 등받이 없는 의자를 초현실주의적인 모습으로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가 다시 그 위에 앉아서는 여러 번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다가 공연 끝부분에서는 처음에 입었던 것만큼이나 화려하지만 좀 더 현실감 있는 의상으로 갈아입고 나와서는 의자에 얌전히 앉아있는 모습은 기묘하다.

            무기력하지만 꼭 필요한 이 주인공들이 들고 있는 “공중으로 뻗은 4개의 철골”, 자그마한 동그란 의자가 사실은 절지동물의 안테나 혹은 사슴의 뿔, 어린 동물에게나 있는 멋진 뿔이라 믿게 만들려는 시적인 의도가 기묘하며, 그런 동물들의 시신이 결국에는 무대 위에 버려지고 마지막에 홀로 남은 무용수가 회개하듯 그 시신들 사이를 배회하며 무대 뒤 심연 속으로 이미 사라져버린 동료들을 찾아가는 모습은 기묘하다.

 

            무대 안쪽에 설치되어 있는 거대한 스크린 위에 박은영이 제작한 독특한 영상이 춤과 음악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상영되는 무용공연은 황홀하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영상에서는 어두운 수호목(守護木)의 가지들이 보이다가 거울에 비친 모습을 통한 잠재의식적 고찰로 넘어가고, 두 번째 영상에서는 화려한 컴퓨터 작업으로 약간의 유희적 터치를 가미한 무채색의 만화경처럼 회절(回折)되는 자세히 들여다본 얼굴("Être/Avoir" N°2)이 흐릿해지면서 화면 상에서는 보이지 않는 몸에서 뻗어 나온 양손에 감싸인 채 종종 끔찍하게 뒤틀려 버리는데 네 번째 영상물에서처럼 일그러진 모습은 아니지만 흑백의 대조 속에서 완전히 분열돼 나타나는 다른 얼굴들의 조합을 교차와 반복과 시차를 통해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공간 너머의 액체 속에서 자유로이 날리는 눈물 혹은 눈송이를 나타내는 물방울 모양의 눈물과 화려한 색채의 구형입자가 난입해 들어왔다가 윤곽이 흐려지면서 화사한 꽃으로 피어나고 천천히 흘러나오다 사이키델릭한 빛의 용암이 되어 흘러 결국에는 물결이 어루만지듯 사라져 무한한 본래의 관능에 결합하는 영상, 공연의 제 2 시퀀스의 시작을 알리는 끝에서 두 번째의 화려한 조형영상("Être/Avoir" N°3)에 매혹되지 않을 수 없다.

            본래의 관능에 연속적인 소리와 미세한 음, 별의 타닥거림과 쨍그랑거림, 갑작스런 북소리, 정적으로 길게 이어지는 단절이 뒤섞인 음악이 더해지고, 태고의 관능은 빛이 들지 않는 생명의 우주적 심층 속에서 현미경으로 들여다 본 듯 진화하는 몇몇 살아있는 세포들, 몇몇 초기 원생동물의 관능을 연상시킨다. 거대한 태풍의 눈, 모든 걸 끌어들이는 바다의 소용돌이가 보여주는 느린 왈츠는 마치 무대 위에서 춤추는 육체를 흡수해 파괴하는 듯하다.

 

            « Interscène » N°1과 N°2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진 이 두 편의 짤막한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면 마술을 보는 듯 사로잡히게 되고, 마르셀 뒤샹의 "여행용 가방"을 암시하는 미니어처 장치와 마치 소인국을 보는 듯한 배경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 Interscène » N°1

            밀폐된 내부, 계단, 을씨년스런 빛과 그림자, 제라르 드 네르발(Gérard de Nerval)의 "우울증의 검은 태양"에서 묘사된 바로 그런 그림자와 빛, 의사야경(擬似夜景)에 노출되어 있는 어두운 상자, 갑자기 자리를 떴다가 곧 다시 되돌아오는 불규칙하고 때로는 전혀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꽃병, 의자, 곱슬머리, 등받이 없는 의자 같은 물체들은, 외벽 없이 밖으로 열려있는 지하실과 창고를 묘사한 이 무대는 매혹적인 동시에 매우 불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뾰족한 모자와 비단 원피스가 걸쳐져 있는 회전 목마가 돌아가고 저 멀리 둥그런 수반(水盤) 안에서 분수가 힘겹게 터져 나오는 동안 기계적인 만큼 자발적으로 자리를 옮겨 다니는 머리 잘린 두 마리의 말, 장난감들, 조촐한 조각품들은 매혹적인 동시에 매우 불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어디로부턴가 나왔다가 들어가버리는 화산 증기 아래에서 물이 흘러 넘치고 고대 분화구가 기염을 토한다… 메트로놈이 움직이는 소리, 그 위로 겹쳐지는 바이올린 소리, 계속되는 마찰음 소리, 멜로디와 물결소리가 들린다.

 

            « Interscène » N°2

            조형예술가이자 비디오 아티스트인 박은영의 영상이 늘 영향을 받으면서도 풍요롭게 해주었던 구체적인 안무를 암묵적으로 재연하려는 듯, 여전히 칠흑같이 어두운 무대에서 그리고 보이지 않는 별에서 쏟아지는 빛 아래에서 서로 얽혀 춤추기 시작하는 인형들, 시인의 펜 끝에서 다시 살아나는 인형들, 살점이라고는 없이 호리호리하고 더벅머리에 화려하다 할만한 누더기 옷을 걸친 인형들, 손으로 만든 인형들이 우리를 현혹하고 매료시킨다.

            성대한 안락의자에 맨발로 앉아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의 후광에 둘러싸여 늘 은은한 밤의 빛을 발산하는 공주 인형의 얼굴이… 눈이 푹 파인 허연 시체의 얼굴이 때때로 보인다. 검은 뱀파이어, 유령이 과연 그녀에게 춤을 추자고 할까? 죽음의 기운이 주위를 맴돌고 죽음의 무도가 펼쳐진다. 저 멀리 청춘 남녀들의 모습이 나타났다가 한 무리의 유령으로 사라지고, 보티첼리의 여신은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가 곧이어 안락의자와 이제는 움직일 수 없게 된 유령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분수는 아무런 동요 없이 계속 물을 뿜어내고 회전목마는 여전히 돌아간다.

            가느다란 빗소리, 미세한 우박소리, 속이 빈 가구가 내는 소리로 이루어진 음악이 흐른다.

 

            "더블 신" 과 "무서운 꿈"...

            넓은 십자창살 모양의 칸막이 뒤로, 어지럽게 피로 얼룩져있는 유리창 뒤로, 붓으로 표의문자를 휘갈겨 쓴 듯하나 오히려 행복한 회화의 흔적처럼 보이는 유리창 뒤로, 침몰한 악몽의 섬광 아래에서 무너진 토대를 받치고 있는 대규모 설치작품 속에 획책되어 있는 참사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뇌우가 치고 새들은 넋을 잃고 동물들이 떠도는 가운데, “폭풍의 언덕” 한복판, 불에 타버려서는 침목, 먼지, 눈보라, 무(無)로 흩어져버린 잔해 속에서 유령의 성의 스산한 실루엣이 무너져 내리는 설치작품의 비극을 알 수 있다.

            바다 속 눈송이처럼 기억의 모래 위에 놓인 조개나 아네모네 같이 일상적이면서도 엉뚱한 몇몇 물체들의 잔해가 널려있고, 여전히 팔딱거리며 생동감 넘치는 대사나 간신히 잊혀진 옛 삶의 흔적이나 우리 꿈의 기억들이 부질없는 희망으로 위축되고 붕괴되어 작열하는 재 속에 떠도는, 유리 새장과 빛의 수족관이 가득한 설치작품 속에 펼쳐져 있는 참사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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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 끊임없이 생생한 감동과 성찰을 불러일으켰던 아름답고 매력적인 이 작품들 외에 박은영의 수 많은 다른 작품을 계속 소개하고 묘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다면 한 편으로는 그의 모든 작품이 작가의 독특하고 탁월한 조형적 창작력, 즉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 생각, 몸, 꿈, 악몽, 감정을 깊이 들여다보게 하고, 어른의 환상과 분리되지 않은 어린 시절의 몽환적이고 환성적인 공간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 야경(夜景), 검푸른 묵상, 퇴화, 앙스타즈(enstase)-중첩되고 주관적인 도취상태-처럼 끊임없이 펼쳐지는 우리 내부에 있는 무한한 외부, 가장 은밀한 외심성(外心性)으로 우리 자신을 한없이 열어 놓게 하는 이런 공간 속으로 들어가게 만드는 작가의 한결 같은 능력을 한 치의 예외도 없이 정확하고 면밀하고 부드럽게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텐데, 이것이 바로 이 작가의 특징이라 하겠다.

            다른 한 편으로는 신체와 형태와 색채의 안무를 불러오는, 복잡하면서도 정교한 영화 & 컴퓨터 기술을 통해 미니어처 조작 및 인형과 장난감의 섬세한 움직임이나 스톱모션을 절묘하게 잡아내는 명암(明暗) 동체사진술을 불러오는 문체처럼, 언제나 섬세하면서도 생생하게 표현되는 시적 문체처럼 펼쳐지는 공간 속에 우리를 밀어 넣는 그 의연한 조형적 창작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무대나 스크린 또는 주로 대형 설치물에서 펼쳐지는 영상이나 육체의 움직임 혹은 휴식에 동반되는 독특한 음악의 재치 넘치는 구두점, 희미한 속삭임, 느린 리듬으로 우리를 매혹시키는 조형적 창작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조형적인 만큼 시적인 이런 문체, 순결한 관능미가 새겨져 있는 이런 문체는 박은영이 파리에서의 학업을 마치고 2007년 프랑스를 떠나기 직전 나에게 작별 선물로 주었던 카와바타 작품집에 실린 단편 « 잠자는 미녀 »에 녹아있는 정숙한 쾌락을 상기시킨다.

 

            현대작가이건 아니건, 박은영처럼 조형예술을 하는 작가이건 아니건 창작을 함에 있어 존재의 의미를 끊임없이 탐구했던 다른 모든 작가들과 로베르 필리우(Robert Filliou) 그리고 진정 풍부한 영감을 소유하고 있는 예술가인 박은영을 통해 불꽃에서 재로 변하는 우리 인간 고유의 조건을 확인하였고, 그의 작품이 우리에게 보여준 탁월한 아름다움을, 그가 만든 쓸쓸하면서 쇠잔한 인공적인 꽃, 정확히 말하자면 눈물과 암흑으로 환심을 사려는 어린 시절의 오의(奧義) 속에서 피어남으로 인해 향수를 자극하는 꽃의 아름다움을 확인하였으며, 놀랍도록 인공적인 그의 꽃으로 인해 예술을 찬양하게 되고 삶과 삶의 작위적이지 않은 꽃을 언제나 더 아름답고 눈부시게 느끼게 됨에 대해 무한한 감사를 보내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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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크 코엔

                                                                                                               파리

                                                                                                            2012년 5월

 

번역 : 문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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