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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개의 달(senulxued)> 리뷰 -

2022.1.25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는 것,
들리지 않는 것을 듣는다는 것

손 옥 주 (공연학자)

senulxued

미디어 아티스트 박은영의 신작 <두 개의 달>이 지난 1월 22일부터 24일까지 파주 헤이리 예술 

마을에 위치한 ‘창작스튜디오 리을’에서 발표되었다. 작가협업스튜디오 EYP Studio의 대표이기도 한 그녀는 다매체성을 특징으로 하는 이번 작업을 위해 무용, 사운드, 조명, 조형설치, 촬영, 의상 등의 분야에서 활동 중인 동료 작가들을 초대해 긴밀히 협업하였는데, 이들이 장시간 준비한 협업의 결과는 스튜디오 전시와 라이브 퍼포먼스, 그리고 유튜브 생중계 등의 방식으로 관객과 만났다. 이번 발표의 경우에는 이처럼 서로 다른 형식이 다중 상태로 포개어져 스튜디오 공간 안에서 동시적으로 경험 가능했던 한편, 그러한 동시적인 시간성 안에서 매체 간의 시차 또한  감각될 수 있었다는 점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본 리뷰는 전시 공간에 초대된 라이브 퍼포먼스, 그리고 라이브 퍼포먼스에 대한 실시간 온라인 송출, 그리고 바로 그 실시간 온라인 송출이 벽면에 라이브 프로젝션 되던 날의 스튜디오 현장, 그 감각의 자리에 대한 소고(小考)이다.

‘창작스튜디오 리을’ 2층에 마련된 공간은 본래 작가들의 작업 공간으로, 이번  <두 개의 달>

작품 발표를 위해 전시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작가는 본래부터 유지되어온 공간의 구조, 즉 수장고와 작업실 등으로 구획된 공간 구조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발표 형식을 고안했는데, 그 결과

공간의 중앙이라 할 수 있는 스튜디오의 한 측면에는 달과 관련된 영상이 반복 재생되는 모니터 두 대가, 그리고 반대쪽 측면에는 색의 유동성을 담아낸 조명기기가 설치되었다.  또한 인테리어용 가벽 파티션을 통해 작업실로부터 분리된 또 다른 공간에는 미디어아트 프로젝션이, 그리고 캄캄한 소규모 공간 안에는 마치 우주 공간을 연상시키는 듯한 블랙 라이트와  형광 드로잉이

설치되었으며, 마지막으로 이번 작품을 위해 자체 제작된 스피커를 통해 전시 공간 곳곳에서

사운드가 플레이 되었다. 사뭇 단출해 보이는 공간의 면면은 그러나 전시와 공연의 담론 안에서 일상적으로 전유되던 둘 사이의 접점 혹은 차이 너머에서 관람의 방식을 새로이 직조하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와 만나 예기치 못한 사유의 지점을 생성하는 듯했다. 이때의 예기치 못함은

흥미롭게도 <두 개의 달>이 제목 그대로 ‘둘’을 지향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작업의 주제와 형식이 수렴되는 지점을 복수형으로 제안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작가에 따르면 <두 개의 달>은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을 토대로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느 날 동생과 함께 달을 바라보다가 문득 자신이 바라보던 달과 동생이 바라보던 달에 대해, 그리고 자리를 옮겨 동생에게 다가가면 자신이 바라보고 있던 달이 사라졌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 작가는 이번 작업에서 미디어와 신체를 매개 삼아 동일한 것, 절대적인 것에 대한 감각으로부터 유추되는 차이에 대해 숙고한다. 이 과정에서 호출되는 차이란 감각의 전제가 아닌, 결과로 도출되는 그 무엇이라 할 수 있겠는데, 이처럼 차이를 일종의 결과로 조건 짓는 맥락은 모든

참여작가에게 있어 작업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작업 방식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자면, 이들은 염색체 염기서열 분석이 완료된 애기장대의 염기서열 데이터를 사운드나 움직임, 조명 등의

연출을 위한 일종의 레퍼런스로 삼아 그로부터 각 파트별 스코어를 도출해내기도 하고, 비가청영역의 초고음역 데이터를 소니피케이션 작업을 통해 가청영역대의 사운드로 변환해낸 뒤에

그 사운드를 창작의 재료로 삼기도 한다. 그런데 이처럼 이미 죽어버린 식물의 영구적인 염기

서열 데이터를 통해, 그리고 인간의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소리의 가청화를 통해 촉발되는 움직임이란 무엇이며, 또한 무엇‘일 수 있는’ 것일까.

발표 현장에서 시청 가능했던 움직임의 단위에 대해 움직임의 실제라고 표현한다면, 이번

<두 개의 달>은 움직임의 ‘가능성’을 실제화한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일원적인 움직임

너머에 있는 가능성의 영역까지도 감각의 영역 안으로 불러오는 것, 그리하여 같은 것이 다른

자리에 배치되거나 다른 시간 안에 배치되거나 다른 음역대에 배치될 때 발생하는 움직임의

우연을 예술적 사건으로 포착해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번 작업의 주요 지점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무용가 송영선의 라이브 퍼포먼스를 현장에서 관람한 관객들은 벽면을 통해

동시에 라이브 스트리밍되고 있는 유튜브 영상 또한 시청할 수 있었는데 그 결과, 좌석 배치에 따라 정해진 각도만큼의 장면만 볼 수 있었던 현장의 관람 조건 안에서 실제 볼 수 없는 부분은 스크린을 통해 다른 공간감으로 가시화되었다. 이때 흥미롭게도 눈앞에서 관람하고 있는 퍼포먼스 장면이 카메라의 시선에 포착, 편집되어 실시간으로 스크리닝 되자, 다시 말해 스튜디오

현장에서 스크린으로 관람 공간이 전환되자, 미세하면서도 급진적인 시간차(interval)가 나타나기도 했다. 지금, 여기에서의 춤이 스크린 속 영상 언어로 변환될 때, 관객은 무엇을 보게 되는

것일까. 둘은 동일한 것일까, 동일하지 않은 것일까. 더 나아가 이때의 ‘동일함’이란 과연 무엇을 조건으로 삼는 것일까. 이 같은 질문의 연쇄 속에서 서로 다른 메커니즘의 시간성이 구성해내는 미묘한 움직임의 시간차를 경험할 때, 비로소 퍼포머의 움직임, 그 전과 후가 공존하는 어떠한 불가능한 실재를 마주할 수 있었다.

<두 개의 달>이라는 제목에 대한 외국어 표기는 ‘senulxued’이다. 실존하지 않는 이 단어에는 제목과 같은 뜻을 지닌 프랑스어 단어(deux lunes)를 거울에 비췄을 때 드러나는 모습이 반영

되어있다. 이처럼 <두 개의 달>은 분명 특정한 기억이나 자료에서 출발한, 그리하여 분명 그와 같은 기억과 자료를 반영해내고 있는, 그러나 동시에 그들과는 무관한 듯 자유로울 수 있는

몸의, 춤의, 이미지의, 빛의, 소리의 움직임을 투영해낸다. 그리하여 ‘동시(simultaneity)’라는

시간 지표에 끊임없이 균열을 내는 이들 움직임의 궤적을 따를 때, 비로소, 관객은,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것들의, 존재와,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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